1.
1년 가까이 블로그질을 쉬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으로 집중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나 올리려면 적절한 아이템을 발굴해야 하고, 그럴려면 뉴스나 잡다한 책들도 봐야하고, 또 그런 다음에 생각도 가다듬어야 하고 자료도 확인해야 하고 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이나 에너지가 만만치 않습니다. 최근 한 1년은 솔직히 본업 외의 이런 부업에 쏟아부을만큼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밑천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공부한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도 사실 독에서 물 퍼내는 것과 비슷해서, 계속 새 것으로 보충해주지 않으면 때가 되면 바닥이 보이게 됩니다. 이 블로그를 2년 넘게 운영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재충전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원래 이 블로그를 시작한 직접적인 이유는 학위논문 주제를 찾고 있던 시절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주제들을 메모해 두기 위해서였는데, 일단 주제를 확정하고 나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넓게 읽고 생각해야 했던 단계에서 하나의 주제에 집중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가면서 이런 식의 메모가 무의미해져 버렸습니다.
2.
다시 블로그에 손을 대는 이유는 위의 세 가지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집중해야 할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새로운 밑천이 충분히 쌓인 것도 아니고, 다시 넓게 읽어야 하는 단계로 간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자니, 명색이 먹물 좀 먹었다는 사람이 그냥 이렇게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지금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온라인에서 담론싸움을 하는 것이 유일하고, 그런 면에서 블로그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대선과 총선에서 한국의 좌파 세력이 초토화되었다는 결과에 놀라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준비되지 않은 민주화세력의 집권, 준비되지 않은 좌파정당의 원내진출이 이런 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은 2002년의 대선과 2004년의 총선 직후부터 어렴풋이 예감을 하고 있었으니깐요. 다만, 생각보다 그 피날레가 심하게 지리멸렬한 것에 약간 어이없어 하고 있기는 합니다. 제가 이들의 "화려한 부활"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이들도 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니깐요. 문제는, 그냥 두고 보기에는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의 손에 정치적 권력과 담론세계의 헤게모니가 넘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3.
지금까지 있었던 글들은 모두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어차피 이 블로그의 성격은 이전과는 조금 달라질테니깐요.
또, 적당한 파트너가 생기면 설치형 블로그로 옮길 계획입니다. 옆에 링크도 걸어놓은 벡커-포즈너 블로그나 EconLog-EconLib 이 사실 제가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델이었고, 이걸 위해서 팀블로그 기능을 지원하는 티스토리에 일찌감치 계정과 주소까지 확보해 두었었는데, "적당한" 파트너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당분간은 이 곳 이글루스에서 개인 블로그로 계속 갈 생각입니다.
새 주소로 가서 완전히 새로 시작할까 하는 생각도 조금 있기는 한데...econostory 라는 주소를 죽이기가 아까워서 말이죠. 어쩌면 멀티블로그로 가게 될 지도 모르겠는데, 이 부분은 일단 좀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